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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서/시편

[시편 강해] 시편1편 (토라송 지혜시)

by 그일라 2019.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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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시편1편

 

1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의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장르]

 

토라송 지혜시

 

시편 1편은 전형적인 토라송이자 지혜시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삶을 최고의 지혜로 여깁니다. 시편 1편은 출바벨론 관점에서 일어야 합니다. 

 

[강해]

 

시편 1편은 시편의 문을 여는 문고리와 같습니다. 포로 이후 편집이 완성된 것을 생각할 때 토라송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지난날의 과거를 회개하고,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재고(再考)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시편 1편을 출애굽 또는 출 바벨론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해 징계를 받아 고통을 받았던 이스라엘에게 계명은 생명과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인애가 풍부하기 때문에 기다리고 또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인내를 죄의 기회로 사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1절에 나타난 악인들이 그랬습니다. 어쩌면 1절의 악인들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시편 기자 자신이거나, 이스라엘 공동체 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시작되는 작은 악한 조언이 결국 자신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고착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악인의 꾀와 여호와의 율법

 

 

시편을 시작하는 시편 1편은 시편을 여는 문고리와 같습니다. 그 문고리는 여호와의 율법(토라)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먼저 시편 기자는 복있는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세 가지는 세 가지 동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점진법을 통해 강화 시키고 있습니다.

 

ㄱ.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라

첫번째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는 악인의 조언입니다. 악인들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지 등을 알려 줍니다. 들어보면 지혜롭고 정말 그런 것 같지만 거짓말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무너뜨린 사단도 처음에는 조언자였고, 위로자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계명을 어기게 함으로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악인들의 꾀가 그렇습니다.

 

ㄴ. 죄인들의 길에 서지 말라

 

'길'은 습관, 행동 등을 말합니다. 삶의 패턴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죄인들의 길은 죄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꾀는 처음의 조언입니다. 한 번 듣고 진짜로 해 봅니다. 두 번하고, 세 번 하면 습관이 됩니다. 이것이 죄인들의 길입니다.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몸이 따라가면 마음도 따라가게 됩니다. 

 

ㄷ.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

 

자리는 좌석 의자를 말합니다. 그 의미는 더 이상 수정하기 힘든 고착 상태를 말합니다. 한 번 한 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삶이 되고, 삶은 결국 운명이 됩니다. 결국 그는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 '오만하다'는 말은 '조롱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그의 생각까지 완전히 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편 기자는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두 가지는 두 동사 '즐거워하라'와 '묵상하라'입니다. 

 

ㄹ.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라

 

즐거워하는 것은 단지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명령형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즐거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즐거워하라는 '즐거움을 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웨스트 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1문답은 인간의 본문에 대해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1.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 
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 요 11:4 , 고전 10:31 , 계 4:11 ) 
(2)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 ( 시 73:25,26 , 요 17:22-24 )

 

우리가 율법을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는 율법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율법을 따라 살아갈 때 기쁨과 영생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ㅁ.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라

 

공자는 논어에서 즐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합니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즐거워한다면 묵상하게 됩니다. '묵상하다'는 '하가'라는 명사의 동사형 '하가다'입니다. 원의는 '중얼거리다'는 뜻입니다. 말은 여러번 반복해서 되내는 것을 말합니다. 소개 여물을 한 번 씹고 다시 꺼내 되씹는것처럼 새기고 또 새기는 것입니다. 여러번 생각할 때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악인들의 꾀를 귀담이 듣고 그것을 실천해 보고, 결국 그렇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꾀'가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사랑하고, 계속 되내입니다. 율법이 생각을 지배하고 삶을 지배하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실천하고 또 실천합니다.

 

3-4절 나무와 겨

 

악인들과 의인들은 겉으로 볼 때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처음 시작은 비슷하고, 때로는 악인들이 더 옳아 보이고 형통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기 때문입니다. 의인들은 어리석어 보이나 결국 시냇가의 옮겨 심겨진 나무처럼 든든하며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됩니다. 

 

ㄱ. 시냇가의 나무처럼

 

의인은 마치 시냇가의 나무와 같습니다. 원문은 '옮겨 심겨진 나무'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옮겨 심겨졌습니다. 그 나무는 원래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 나무를 물이 흐르는 시냇가에 옮겨 심었습니다. 물이 마르지 않는 한 나무는 영원토록 풍족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율법은 시냇가의 물과 같습니다. 항상 율법을 가까이 하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면 언제나 형통의 삶을 살아갑니다.

 

ㄴ. 바람에 나는 겨

 

시인은 '악인들을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냇가의 심겨진 나무와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바람은 시련을 말합니다. 악인들들은 바람이 불 때 아무 힘도 없이 날아가 버립니다. 추수하면 곡식을 턴 다음 마지막으로 바람에 알곡을 날립니다. 그러면 알곡은 아래로 떨어지지만 가라지와 알곡이 아닌 쭉정이 등은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멀리 날아간 겨는 썩혀 거름을 만들거나 아예 태워 버립니다. 악인들의 운명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5-6절 악인들의 심판과 의인들의 모임

 

마지막에 이르러 심판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바람은 시련이고, 날아가는 것을 그들의 운명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도 그와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인정 받지 못하며 멀리 떨어져 나갑니다. 이에 비히 의인들은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의인들의 모임'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모임으로 영원한 천국을 전제합니다. 

 

[묵상]

 

처음 시작은 작았습니다. 아주 작은 조언을 듣고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도둑질은 결국 소를 훔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악인의 시작도 그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사소해 보이는 작은 죄를 짓습니다. 그러다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되고, 후에는 자신도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아주 사소한 죄를 철저히 막아야 합니다.

 

의인의 모습은 답답할 정도로 소극적으로 보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읽고 묵상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붙들고 살려고 몸부림칩니다. 잔꾀도 부릴 줄 모릅니다. 그는 매일 밤낮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조롱하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비판해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인 것을 알고, 그것이 진리인 것을 믿습니다. 결국 그는 점점 자라나고 시절을 쫓아 선한 열매를 맺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잔머리를 굴리고 잔꾀를 부리던 사람들은 모드 사라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이 아무리 지혜롭다한들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에게 피하는 자가 지혜자이며, 그를 붙드는 자가 능력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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