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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역사] 4) 통일왕국시대(1050-930)

그일라 2019.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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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역사] 4. 통일왕국시대(1050-930)

 

 

사사시대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종말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가져온다. 앞으로 이스라엘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이것으로 실패할 것인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실패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실패할 수 없음을 다음의 역사를 증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둠의 사사시대 속에서 모압 여인 룻을 통해 다음 시대의 서막을 알린다. 사사시대의 마지막은 사무엘상에서 시작된다. 엘리 제사장을 통해 불임의 여인 한나가 임신하게 되고, 한나는 마지막 사사 사무엘을 낳음으로 이스라엘의 왕국시대를 열게 된다. 사무엘은 장로들의 요청에 의해 초대 왕인 사울을 세우나(B.C. 1050) 버림을 받는다.

 

사울왕(B.C. 1050-1010)

 

사울은 베냐민 지파이며 기스의 아들이다. 사무엘서 서두를 사사기 마지막 부분과 연관 지어 본다면 베냐민의 지파에서 왕이 된다는 것은 혁명적 사건이다. 사사기 종결 부분에서 베냐민 지파는 레위지파의 첩을 강간하는 일로 이스라엘을 내분이 일어나 대부분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안에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사울이 최기에 왕이 되었을 때 무시당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울이 타인과 비교해 탁월한 외모를 지녔는지 모르지만 그의 출신성분은 매우 열악했다. 하나님은 가장 비천한 존재를 들어 사용하신다. 그러나 불행히 사울은 얼마 가지 않아 교만해졌고, 어리석어 졌다. 초반에 성실한 하나님의 도구였지만, 나머지 생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쫓아다니며 허비한다. 결국 사울은 40년 동안 통치하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자살함으로 생을 마친다.

 

다윗(B.C. 1010-980)

 

사무엘은 사울 대신 목동이었던 다윗에 기름을 부름으로 다윗왕가를 세운다. 유다 지파 출신인 다윗이 제2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역시 40년 동안 통치한다. 하나님은 다윗 왕을 통해 ‘영원한 나라’를 약속하신다.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음으로 버림을 받는다.(삼상 15장)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베들레헴 이새에게 가서 그의 아들 중에서 기름 붓고 왕으로 삼으라’ 명령한다.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양을 지키는 자였다.(삼상 16:11) 당시에 목자는 종들이 하는 천한 직업이었다. 이새가 다윗에게 자신의 양을 맡겼다는 것은 아들로서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형들 역시 다윗을 무시한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신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조롱한다.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장(戰場)에 나갔다고 벌벌 떠는 이스라엘 앞에서 골리앗을 물매로 넘어뜨린다.(삼상 17장) 그로인해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고 군사 지휘관이 되지만 동시에 사울의 시기와 핍박을 동시에 받게 된다. 결국 사울의 나머지 생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추격하는 데 모두 사용한다. 비록 다윗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통해 믿음의 사람으로 단단해 진다.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함으로 사무엘상은 묻는 닫는다.

 

사울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다시 내전이 일어난다. 다윗이 비록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이스라엘 전체가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헤브론으로 올라가지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와 기름을 붓고 왕으로 삼는다.(삼하 2:4) 사울을 따르던 이들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사울을 이은 두 번째 왕으로 삼는다. 그때 이스보셋의 나이는 무려 사십 세였다.(삼하 2:10) 이스보셋이 2년 동안 왕으로 있었다는 표현을 통해 다윗과 사울을 따르던 이들과의 전쟁은 2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고 전권을 행사했다. 시간이 갈수록 전세가 다윗에게 기울자 아브넬은 다윗에게 항복한다. 그러나 다윗의 군대장관이던 요압이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를 조용히 불러내 이야기하는 척 하면서 살해한다.(삼상 3장) 아브넬이 죽자 이스보셋도 레갑과 바아나에 의해 살해당한다.(삼하 4장) 이스보셋이 죽자 그제서야 이스라엘 온 백성의 장로들이 헤브론에 있던 다윗을 찾아와 왕을 삼는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쳐서 빼앗아 그곳을 자신의 왕궁으로 삼는다.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의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삼하 5장)

 

이후, 다윗의 생은 빛과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진다. 다윗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했던 땅을 거의 대부분 차지한다. 물론 솔로몬 때에 더 확장된다. 용병술에 능했던 다윗은 숙적이었던 블레셋과 에돔, 모암, 암몬 등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속국으로 만든다. 다윗이 왕이 된 후 전반기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삼하 8:14)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집안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 압살롬의 반역과 암논과 다말의 사건 등은 다윗의 생애 말년에 깊은 슬픔과 고통을 준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쫓겨 광야를 다시 헤매게 된다.(삼하 15-19장) 그러나 그것을 끝나지 않고 세바의 반역이 일어난다. 세바는 베냐민 지파 비그리의 아들이었다. 그는 다윗이 왕이 된 것에 불만은 품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과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규합해 반역한다. 요압에 의해 반란은 제압되고 평안해진다. 다윗의 마지막 실수는 이스라엘의 인구조사이다. 단순한 조사가 아니라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교만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다시 다윗을 징계하고 결국 죽음의 사자가 아리우나 타작마당에서 멈춤으로 그곳에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삼하 24장) 그곳에 후에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세워진다. 사무엘서는 이렇게 마무리 된다.

 

솔로몬(B.C. 980-931) 

 

다윗과 우리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여 낳은 아들은 죽고 두 번째 아들인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아 40년 동안 통치한다. 솔로몬의 통치는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다윗에 의해 준비된 성전을 마무리한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린 다음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성전 공사를 시작한다. 솔로몬의 이야기는 열왕기상 1-11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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